손님 정보: 민서, 26세 직장인.
감정/상태: 불면증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모찌 종류: 잠드는 복숭아 모찌
효과: 입에 넣으면 생각이 조용히 풀리며 서서히 잠들게 됨. 복숭아 잼과 안개, 들국화 가루가 부드럽게 감정을 눌러줌.
주의사항: 너무 맛있어서 빨리 먹으면 체하거나 효과가 덜해 잠에서 깰 수 있음. 꼭 천천히 음미하며 먹을 것.
민서는 오늘도 여전히 잠에 들지 못했다. 잠들 수 없었다기보다, 잠들 틈을 주지 않는 머릿속이 문제였다.
침대에 누워 창밖 가로등 불빛을 세다 보면 갑자기 업무 실수가 떠올랐고, 억지로 눈이라도 질끈 감으면 아주 오래전 싸운 친구 얼굴까지 겹쳐졌다.
“그때 그냥, 사과라도 할걸…”
민서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개를 바꾸고, 물을 마시고, 휴대폰을 멀리 던져봐도 머릿속은 자기 할 말을 끝내지 못한 사람처럼 계속 웅얼거렸다.
“아침에 먹을 에너지 드링크라도 사러 가야겠다.”
그렇게 민서는 차가운 밤 공기를 뚫고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오늘따라 편의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뭐야, 오늘 무슨 날이야?”
골목 하나를 더 돌아나갔을 때, 희미하게 김이 새어 나오는 작은 상점을 마주했다.
‘몽실모찌’
유리문에는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모찌입니다.’라는 말이 눌러쓴 붓글씨로 붙어 있었다. 웃겼다.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하지만 괜히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민서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따뜻하고 끈적한 복숭아 향이 코끝에 박혔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깊었다. 찜기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천장에 모여 작은 구름을 만들고 있었고, 구름 아래에 푸근한 여인이 두 손을 앞치마에 얹은 채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몽실 모찌입니다. 편히 둘러보세요.”
민서는 순간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다 얼른 입을 열었다.
“…잠이 안 와서요.”
웬지 그래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이더니 뒤쪽 선반을 한번 쓱 훑었다.
“오늘은 곶감 모찌가 많은 날인데… 그건 오래된 생각들만 눌러주는 편이라, 손님한텐 크게 도움이 안 될 수 있어요.”
그녀는 작은 찜기 하나를 열고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찬장에 들어있던 복숭아 잼과 싱싱한 복숭아를 자르더니 잼을 얇게 펴 바른 후 팥앙금으로 부드럽게 감쌌다. 그러더니 반죽을 전분 가루에 올려 얇게 핀 후 앙금에 속살을 감춘 말랑한 복숭아를 넣어 예쁘게 모양을 잡았다.
그녀가 작고 반들반들한 복숭아 모찌를 예쁜 종이접시에 올려 포장지에 담아 건넸다. 그녀가 진짜 나뭇잎으로 만든 스티커를 포장지에 꾹 눌러 붙여주었다.
“복숭아 잼 안에, 안개를 아주 조금 넣었어요. 들국화 가루도 섞었고요.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잠드는 타이밍을 앞당겨줄 거예요.”
망설이던 민서가 포장지를 건네받자 약간의 묵직함이 기분 좋게 손끝을 맴돌았다. 여인이 진열대에서 다른 접시를 꺼내며 덧붙였다.
“참, 비슷한 효과로 물수제비 모찌도 있답니다. 다만 이건 생각을 하나하나 던져보는 기분인데… 그렇게 잠들면 꿈이 너무 많이 튀어 잘 못하면 깰 수 있거든요. 손님에겐 생각 정리보단 깨지 않는 하룻밤이 더 필요할 테니까요.”
민서는 포장지를 소중히 꼭 껴안았다. 여인의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떡이라 체할 수 있으니 빨리 먹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며 드세요.”
민서는 집에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모찌를 조심스레 꺼냈다. 손끝에 아직 따뜻함이 느껴졌다. 입에 넣자 달큰한 향과 함께 ‘생각이 멎는 기분’이 느껴졌다. 아니, 이 엄청난 달콤함과 새콤함에 생각이 절로 멈췄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했다.
머릿속 웅얼거림들이 한 단어씩 천천히 꺼내졌다가 숨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침대에 몸을 살짝 기대자마자 눈이 기분 좋게 스르르 감겼다.
다음 날 민서는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들었다.
“언제 잠든 거지?”
이렇게 컨디션이 좋아 본 게 언제였는지, 민서는 기분이 새로웠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샘솟아 어젯밤 떠오른 친구에게 ‘잘 지내?’라는 메시지를 보내볼까 하다 말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대신 어둑한 커튼을 쳤다. 그러자 아침 햇살이 민서의 방 안을 밝혔다.
“잘 잤다.”
말꼬리엔 작은 웃음이 붙었다. 그걸로 충분했다.